죽음과 존재를 유머로 풀어낸 사유형 판타지

2025. 11. 20. 08:30자아실현

 
<<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이영도식 통찰’의 정수 >>
 
이영도의 최신작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한 인물이 남긴 메시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구조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기존 판타지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삶과 의식,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을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내는 점에서 이영도만의 세계관이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한다.

■ 핵심: ‘임사’에서 돌아온 자가 남긴 질문들

작품은 죽었다가 되살아난 뒤 ‘기이한 전언’을 남기기 시작한 어스탐 경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찰과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 전언들은 단순한 예언도, 망언도 아닌,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을 흔드는 철학적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독자는 어스탐 경의 말 하나하나가 진실인지, 과장인지, 상징인지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독서 과정 자체를 ‘해석의 모험’으로 만든다.

■ 이영도 특유의 서술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작품

이영도 작가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지적 유머, 느슨하지만 빈틈없는 대화, 캐릭터 간의 긴장감을 부드럽게 밀어붙이는 문체가 이번 작품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웃음 뒤에 가려진 깊은 질문들—

  • 인간은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는가
  • 우리가 보는 세계는 ‘객관적 사실’일까
  • 죽음 이후의 말은 얼마나 신뢰 가능한가
  • —같은 철학적 고민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 https://youtu.be/X8McUzbiZ8g?si=l6DoVEz_MrZo5pwd

■ 캐릭터 중심의 관찰 기록 형식이 신선

전체 이야기는 크게 기록물·대화·증언이 교차하는 구성이다.
이 형식은 ‘임사 체험’이라는 모호한 영역을 다루면서도 과도한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
독자는 각 인물이 말하는 ‘어스탐 경’의 전언을 퍼즐 조각처럼 맞춰 보게 되며, 결과적으로 이야기의 흐름보다 이야기를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독서의 재미가 된다.

■ 작품이 주는 인상: “진지함과 가벼움의 균형”

이 작품은 죽음, 영혼, 의식이라는 무겁고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서술은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
이영도 특유의 논리적 대사, 위트 있는 구절, 상징을 숨긴 캐릭터 묘사 덕분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끌려 들어가며, 어느 순간 ‘철학적 사유’에 도달하게 된다.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 방식의 지적 유머가 작품 전반에 자리하고 있어, 오랜 팬뿐 아니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매력적이다.

■ 총평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자’라는 익숙한 소재를 이영도만의 논리와 유머, 철학으로 재배열한 작품이다. 어떤 결론을 내리는 작품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사유형 판타지에 가깝다.
비약 없이 차분하게 쌓아가는 미스터리 감각과, 독자의 지성을 자극하는 문장들이 인상적인 소설이다.
가볍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이며, 읽는 동안 ‘나 역시 어떤 전언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