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올리브에게' 서평 — 관계의 상처와 치유의 가능성을 탐구하다

2025. 12. 5. 08:30자아실현

관계의 그림자와 기억의 물성 ― ‘나나 올리브에게’를 읽고 사유하다

루리의 소설 『나나 올리브에게』는 인간 관계 속에서 서로의 결핍을 매만지고, 다만 그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지는 못하는 어떤 애틋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인물 간의 감정이 대립하거나 격정적으로 폭발하는 유형의 서사가 아니라, 마치 마른 종이에 물이 스며드는 듯한 방식으로 서서히 파고드는 감정적 울림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독자는 인물들의 말과 침묵, 시선과 회피를 따라가며 그 미묘한 감정의 결을 만져보게 되었다.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두 인물, 나나와 올리브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실질적으로는 타인의 삶에 우리가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는가, 혹은 관여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질문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타인을 온전히 구원할 수 없으며, 다만 동행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부드럽지만 단단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1. 인물에 대하여 ― ‘함께 있음’의 빛과 그림자

이 소설의 인물들은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부서진 부분을 안고 살아가며, 서로의 균열을 바라보는 방식 또한 다르다.

  • 나나는 상대의 상처를 보듬고자 하지만, 그 보듬음 속에는 자신이 구원자가 되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
  • 올리브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며, 도망치듯 거리를 둔다.

이러한 인물 구성은 등장인물 간의 역학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감정의 미묘한 양상을 관찰하도록 유도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등장인물을 판단하거나 재단하는 시선을 요구하지 않고, 다만 그 모습 그대로 지켜보게 한다. 이는 마치 연극을 볼 때 배우들의 감정을 이해하되, 그 감정에 직접 개입하지 못하는 관객적 제한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 소설은 ‘함께 있음’이 단순히 물리적 동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과 결핍을 공유하는 감정적 공명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치 서로의 그림자를 겹쳐 하나의 형체를 이루듯, 인물들은 불완전함으로 연결된다.


2. 서사의 구조 ― 말보다 중요한 침묵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학적 기법은 분명한 사건보다 말하지 않는 것, 즉 침묵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많은 말을 건네지만, 실질적으로는 ‘하지 않은 말들’이 서사를 견인한다. 이는 서사적 긴장감을 형성하며, 독자로 하여금 다음 문장을 기다리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문장이 간결하되 건조하지 않고, 담백하되 무심하지 않으며, 감정이 절제되어 있음에도 곳곳에서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탁월한 장치로 작용한다.

마지막 장면에 가까워질수록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은 더욱 얇고 흔들리는 선이 되어가며, 독자는 그 끝에 도달하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벅참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의 역량이 드러난다. 감정의 절정은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데, 내부적으로는 그 감정이 치밀하게 끓어오르는 상태가 된다.


3. 감정의 재현과 독자의 몰입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는 단지 이야기를 소비하는 독자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삶 속에 조용히 동행하는 입장이 된다.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독자는 스스로의 경험을 소환하고,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비슷한 감정들을 대면하게 된다.

  • 우리는 누군가를 돕고 싶지만, 사실은 그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 한 적이 있다.
  • 우리는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싶었지만, 상대는 오히려 거리를 두며 멀어져 갔던 경험이 있다.
  •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으로 상대를 숨 막히게 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이러한 기억들을 조용히 자극하며, 독자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만든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이다.


4. 마무리하며 ― 조용한 울림의 힘

『나나 올리브에게』는 거대한 서사도, 충격적인 반전도, 격렬한 사건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독자에게 깊이 남는다. 관계의 복잡성과 불완전함,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이해와 보듬음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덮는 순간 ‘비워지는 자리’가 생기는데, 그 자리는 단지 허무가 아니라 사유의 공간이 된다. 독자는 그 공간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타인과 자신 사이의 관계를 조용히 들여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