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다시 듣다

2025. 11. 7. 08:30사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기형도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다시 듣다

문학과 지성사 공개 이미지

 

그의 시는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을 흔든다.
이번에 출간된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기형도의 미공개 원고와 편지,
그리고 생전의 육필 원고 일부를 모은 특별한 유작집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마치 오래된 거리에서 그의 숨결을 다시 만나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1️⃣ 잃어버린 언어의 조각을 다시 붙이다

기형도의 시는 언제나 부재와 고독의 언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유작집에 담긴 글들은 한층 다른 결을 보여준다.
생의 막바지, 그는 여전히 고독했지만 그 속에서 희미한 생의 의지를 붙들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의 마지막 문장은 절망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의 약속처럼 다가온다.


2️⃣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의 의미

이 제목은 곧 기형도의 시적 존재 방식을 함축한다.
길 위는 정착하지 못한 인간의 상징이며,
중얼거림은 세상과의 미묘한 거리 두기다.
그는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자신의 고요를 지켜냈고,
그 고요 속에서 인간의 불안과 상처를 정직하게 마주했다.

 

특히 시 〈길 위에서〉에서의 구절,

“나는 끝없이 걸었다 / 내 그림자가 먼저 저물었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그의 고독이 얼마나 단단하고,
동시에 얼마나 투명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의 시는 ‘고독의 빛’을 품은 언어다.
그 빛은 슬프지만 결코 꺼지지 않는다.

또 다른 시 〈밤의 문장〉에서는

“나는 어둠의 어깨를 빌려 잠든다 / 그곳엔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없다.”

이 표현이 깊이 남는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백이지만,
사실 그 속엔 세상을 향한 뜨거운 연민이 숨어 있다.
그는 ‘부재’를 통해 ‘존재’를 말하고,
‘침묵’을 통해 언어의 진심을 꺼내 보인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단순한 유작집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기형도 세계로의 초대이며,
그가 남긴 시간의 잔향을 따라 걷는 하나의 순례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그가 여전히 우리 곁 어딘가에서 걷고 있다는 감각이 남는다.
그의 중얼거림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멈추지 말라, 끝까지 걸으라.”


“그의 시는 절망 속에서도 언어로 존재를 구원하려 했던 한 인간의 기록이다.”


3️⃣ 편집자의 정성, 그리고 독자의 자리

유작집에는 시인이 직접 남긴 육필 원고가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알라딘 공개 이미지

 

삐뚤빼뚤한 필체 속에는 그가 단어 하나에 얼마나 고심했는지가 드러난다.
편집자는 최소한의 손질로 시인의 원형을 보존했고,
그 덕분에 독자는 마치 기형도의 책상 앞에 앉아 그의 숨소리를 듣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시인이 떠나간 지 30년이 흘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의 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있다.


4️⃣ 오늘의 독자에게 남기는 울림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단순한 문학적 기념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살던 감정의 깊이를 되묻게 만든다.
SNS와 속도에 지친 시대에,
그의 중얼거림은 오히려 느림의 힘으로 다가온다.
기형도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질문은 세월이 흘러도 결코 낡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 마무리하며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를 읽으며 그가 연세대 출신의 유명 일간지 기자라는 것을 넘어
죽을 때까지 감춰두고자 했던 자신의 비밀스런 시선으로 어떻게 또 다른 이의 마음을 깨우는지를 느꼈다.
그의 언어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길 위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다.


📚 도서 정보

  • 도서명: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저자: 기형도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출간일: 2019년 3월 (30주기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