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끝에 피는 깨달음

2025. 5. 10. 12:20사랑

— 앤소니 드 멜로 신부의 유머로 본 삶의 역설


“깨어남은 진지하게 하지 마라.”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의 유머는 늘 이 말을 반증한다. 겉보기엔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깊은 통찰이 숨겨져 있다. 오늘 나는 그분의 유머 5개를 통해 삶과 자아, 사랑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뒤집어보았다.

“어느 수도사가 제자에게 물었다.
‘깨어 있는 게 무엇인지 말해보게.’
제자가 말했다.
‘모든 것이 그대로 보입니다.
나무는 나무이고, 하늘은 하늘이고…’
수도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야 좀 눈을 떴군.’”

이 이야기는 ‘깨달음은 일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는 것’이라는 역설을 품고 있다. 우리는 종종 깨어남을 특별한 체험이라 오해하지만, 진짜 깨어남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낯선 것을 깊이 보게 하는 눈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신부님, 제 아내가 저를 바꾸려 해요.’
드 멜로가 웃으며 답했다.
‘결혼의 진실을 이제야 알게 됐군요.’”

이 짧은 대화에는 관계의 본질이 녹아 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상대를 받아들이기보단 바꾸려 하고, 상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욕망이 사라질 때 시작된다’는 통찰이 이 유머에 담겨 있다.

“수도원에 신입이 들어왔다.
규칙 중 하나는 ‘말하지 않기’였다.
3년 후, 그는 ‘밥이 너무 짜다’고 말했다. 또 3년 후엔 ‘침대가 딱딱하다’고 했다.
그에게 수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계속 불평만 하는군.’”

침묵 속에서조차 불평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이 없어도 마음속 불만은 끓어오른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해석하는 태도’임을 이 유머는 날카롭게 드러낸다. 나는 내 삶의 침묵 속에서도 여전히 불평 중이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깨닫는다.

“누군가가 물었다.
‘왜 신은 우리와 말하지 않으십니까?’
신부님은 웃으며 말했다.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못 들을 뿐이죠.’”

진리는 늘 조용히 속삭인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늘 생각으로 시끄럽고, 판단으로 어수선하다. 내가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신이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조용히 듣지 않기 때문이다. 이 유머는 내 일상 속 ‘과잉된 해석’의 병을 정확히 짚어낸다.

“신부님이 설교를 마치자
한 신도가 말했다.
‘말씀 중 어떤 부분이 진짜인가요?’
신부님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웃은 부분 말입니다.’”

가장 웃긴 순간이 가장 진실한 순간일 수 있다. 우리는 심각함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지만, 종종 유머 속에서 더 큰 지혜가 피어난다. 웃음은 방어를 내려놓게 하고, 고정관념을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 다섯 가지 유머 속에서 나를 본다. 나무를 나무라 보지 못하고, 사랑을 통제라 착각하며, 침묵 속 불평을 숨기고, 내 안의 소음을 ‘신의 침묵’이라 오해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웃음은 나를 부드럽게 흔들어 깨운다. ‘그래도 괜찮아, 사랑해. 지금도 너는 깨어날 수 있어.’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은 우리에게 유머라는 방식으로 말한다.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진리는 웃음처럼, 그 순간 잠깐 마음을 열었을 때 슬쩍 스쳐간다. 그걸 붙잡을 수 있다면, 그건 유머가 아니라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