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궁》을 보며, 권력과 여성의 서사를 마주하다

2025. 4. 26. 21:50사랑


요즘 나를 가장 사로잡고 있는 드라마는 단연 SBS의 금토극 《귀궁》이다.
조선 시대 궁중을 배경으로 한 이 사극은, 단순한 권력 다툼의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는다.
권력을 둘러싼 심리전과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의 복수가 중심에 있다.
처음에는 다소 익숙한 사극의 틀처럼 보였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한 사람의 성장과 복잡한 인간 내면에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의 눈빛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들, 차오르는 분노와 억눌린 눈물, 그리고 차가운 복수의 결의까지.
특히 최근 회차에서는 “전하께선 권력을 쥐신 줄 아오나, 실은 권력에 붙들려 사는 것이옵니다”라는 대사가 긴 여운을 남겼다.
이 한마디가, 단순한 왕권의 이야기를 넘어서 인간이 권력이라는 허상을 좇다가 결국 그것에 묶이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 "진실은 언제나 하나. 하지만 그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인간이니까."
이 대사는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이 때로는 아프고 힘들더라도, 결국 받아들이는 것이 성장임을 말한다. 인간의 감정과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 대사라 더욱 와닿았다.

연출 또한 굉장히 섬세하다.
고전적인 궁중의 미장센과 현대적인 카메라 구도가 조화를 이루며, 장면 하나하나가 회화처럼 펼쳐진다.
특히 조용한 긴장감이 흐르는 복도에서 인물들이 교차하는 장면은, 대사가 없이도 긴장과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화려한 의상이나 세트보다도 그 공간이 주는 정서적 무게감이 더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여성 인물이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이다.
단순히 피해자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때로는 냉철하게 판단하며 서사를 이끌어간다.
그 모습은 어쩌면 우리 현실 속의 여성들이 살아가는 방식과도 닮아 있어 더욱 공감이 간다.
《귀궁》은 과거의 이야기 같지만,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질문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진짜 원하는 것을 향해 가고 있는가’,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나를 살리고 있는가, 소모시키고 있는가.’
그 물음은 《귀궁》 속 인물들의 선택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이어진다.
좋은 드라마는 결국, 이야기 속 거울을 통해 나를 비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