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로망, 편안한 삶

2024. 11. 13. 00:45사랑

https://youtu.be/SWev5p4u32Q?si=HWPTmlXLeegilCr7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온한 삶을 갈망하며 로망으로 삼는다. 지금까지 나 역시 그래왔고 대다수 사람들도 그런 삶을 선호한다. 그런데 보통 무난한 삶으로 흘러가면 나오는 반응들이 "뭔가 심심하다", "재미없는데 뭔가 재미난 일 없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 편안한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극적으로 드라마틱한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사를 가보면 그 동네사람들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평범하지만 무난한 삶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라면 당연히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경우엔 잘 맞는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동적인 에너지를 가진 경우엔 이런 에너지가 따분하거나 지루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들이 찾는 역동적인 에너지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는데 고사성어로 '유유상종( 類類相從 )'이라고도 한다. 격변의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자 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 평온한 삶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는 왠지 겉도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도 그런 것일 수 있다. 목가적이고 전원생활을 동경해서 시골로 내려갔던 사람들이 유유자적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도시로 복귀하기도 한다, 지역 텃세로 도망치듯 돌아오기도 하고.
 
그렇게 물흘러 가듯 무난하고 안온한 삶을 사는 주부가 있었다. 그녀는 평소 기독교의 간증체험을 주의깊게 듣곤 했는데 평탄한 그녀의 삶과는 달리 치열한 삶을 사는 신도들의 간증체험을 듣는 걸 재미있어 했다. 그래서였는지 유독 격동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지인의 고민상담을 해주길 자청했다. 그녀의 지인은 마침 암투병을 하는 언니의 병 간호를 하느라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필요가 있었고 그녀는 그런 지인에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안부도 안부였지만 지인의 극적인 상황을 들으며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그래?"라며 뒷 이야기를 재촉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신앙 간증의 다음 편 스토리를 기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지인은 거기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주부를 탓할 수는 없다. 거기에서 우리는 바이오 리듬처럼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 삶의 변화를 알게 모르게 쫓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도 하고 선호하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평온한 삶을 선택한 그녀의 다음 번 운명은 무엇일지 예측가능하지 않을까? 자신이 흥미로워하고 좀더 집중하게 되는 그 지점으로 에너지가 모이기 때문에 그녀의 다음번 삶은 드라마틱한 선택을 할 수 있겠다.
 
태어나기 전에 인간의 삶을 설계할 경우 의식성장이라는 배움을 목표로 한다면 잔잔하고 평온한 삶도 나쁘진 않겠지만 극적인 경험을 통해 깊이있는 통찰을 체득하는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대다수 지쳐있는 소시민들의 삶은 당연히 힐링할 수 있는 목가적인 삶을 필요로 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잠시 쉬고 힘을 얻고난 후에 하는 선택은 또다른 도전이고 출발을 향한 역동적인 삶이 된다. 아프니까 건강을 더 절실하게 갈구하고 따돌림을 당하니까 사랑에 대한 갈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괴롭고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고 어떻게 실현시켜야 하는지 길을 찾아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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