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의 거울에 비치는 나

2024. 11. 12. 00:14사랑

https://youtu.be/c-K_VQsOdNM?si=wuf3FS-WOdb-3Sye

 
 
자식들은 말한다, "난 결코 부모처럼 살진 않겠다"고.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그 자식이었던 그들이 부모의 나이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부모와 비슷한 언행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 운명은 비슷하게 답습되며 개의 목줄같은 테두리를 한치 앞으로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친부모지만 친자식을 살갑게 대하기는 커녕 짜증해소용으로 대했다면 그 자식은 커서 부모가 되었을 때 비슷하게라도 자기 자식을 살갑게 대하지는 못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왜 조상에서부터 부모까지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전해지는 DNA 습성을 바꾸지 못할까?
 
치매에 걸린 부모라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같은 말을 반복해서 되뇌인다. 기억을 돌이키며 지난 스토리를 재상영하는 동안 자식은 대대로 물려내려왔던 DNA 습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집단 무의식일런지 모르겠지만 그가 바로 당신이라면 지금 여기에서 그것을 주의깊게 살펴볼 수 있다. 어려운 시절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자신은 굶주리며 영양실조로 기절을 몇번씩 했지만 지금와서 보니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부모 세대의 말 속에서 부모의 삶은 현재까지 그대로 지배당하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전기 아낀다며 따뜻한 이불을 이삿짐처럼 옆에 쌓아두고 웅크리며 자는 치매노인의 현실을.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자신에게 다소 모질게 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불현듯 그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현대를 살고 있음에도 춥고 힘든 과거 속에 붙잡혀 지나치게 자신을 희생하고 아끼는 것이 과연 꼭 옳은 것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자신을 위해 어느 정도 사랑의 자리를 내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저렇게 모질고 박절하게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그것이 전통과 종교적인 희생과 선함을 표방한다고 한들 가장 중요한 자신을 뒤로 하고 행해진 것이라면 시간이 흐른 뒤 결국 피해의식과 후회를 남기게 되는 것 같다.
 
'착하다'는 말에 세뇌되어 그렇게 행동하려고 자신을 불사지르는 것이 어리석음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희생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착함, 즉 선함은 어리석게 착한 바보가 아니라 지혜롭게 착해야 한다는 것을 지난 시간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삶의 목표가 착하게 사는 것이라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이 넘쳐나올 때 그 희생은 아깝거나 피해의식을 느낄 만큼 후회로 다가서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는 지키되 자신을 향한 사랑이 충분히 넘쳐나서 남는 것을 주변에 나누어주는 것은 여유로우면서 기쁠 수 있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에 여자주인공이었던 비비안 리가 허영심에 가득한 여성을 연기했던 적이 있다. 그 허영심은 이루지 못한 욕망을 대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 욕망을 잠재우지 말고 열망으로 표출했다면 그 삶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허영심은 과장되고 과도한 것이겠지만 욕망이 그렇게 병들었을 때는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미뤄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욕망을 열망으로 불태워 자기 안에 후회가 남지 않게 발산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처방전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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