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2024. 12. 2. 23:26사랑

https://youtu.be/js6zXgxk0cQ?si=YOZ8Pij2vVSZTYzT

 
 
어릴 적 눈내리던 한겨울에 우연히 밤색 강아지를 얻어 키우게 되었다. 안에서 우리 남매들은 강아지와 노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덧 밤이 되었고 어른들은 개는 사람과 같이 자면 안되다며 개집도 없는 정원으로 강아지를 쫓아냈다. 바람도 차가웠고 눈까지 내리고 있어서 강아지는 문을 긁으며 애처롭게 울어댔다. 부모님은 강아지가 알아서 자기 잘 곳을 찾을 거라고 했다. 괜히 응석받아주면 강하게 크지를 못한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조급한 마음에 문을 열고 정원에서 강아지를 찾아다녔다. 강아지는 구석진 곳에 눈을 맞은 채 얼어죽어 있었다.
 
어느 영화 대사처럼 "뭐시 중헌디?"를 생각나게 하는 지점이다. 그때 추위에 떠는 강아지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아야 했던 건 무엇때문이었을까? 강아지의 생존본능을 과잉오해한 어리석음이었는지 단지 동물을 싫어해서 집안을 청결히 하고자 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결국 죽게 만들 작정이었다면 처음부터 생명을 키우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가족들마다 취향이 달라서 최종보호자였던 부모는 싫어도 불가피한 선택, 즉 강아지를 키우되 집안에선 사람과 함께 잠재우지 않고 밖에서 자도록 한 것이었다.  
 
자신만 숨겨뒀다가 혼자 먹으려고 아껴두는 홍시는 많이 모아둘수록 다 먹지도 못하고 시간이 지나서 부패하게 되면 도리어 상해서 먹을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아끼다 똥된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두고 생겨난 말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의외로 이런 상황들을 많이 접한다. 불치병으로 다 죽게 될 때까지 애써 긁어모으던 화폐도 그렇고 아끼며 조금씩 써오다가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화장품도 그렇고 애지중지 아껴입던 유행지난 옷가지도 그렇구. 우리가 그때 그 순간만큼은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져서 조금씩 자기만 사용하며 숨겨뒀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 자신도 쓸 수 없어 버려야 하는 때가 온다.
 
죽을 때 어떤 것도 자신이 함께 가져갈 수 없는 것들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아끼는 귀중품에 목숨을 건다. 때로는 생존본능 때문에, 때로는 미련과 과욕과 집착 때문에 수많은 가능성이 열린 한편의 길을 내버리고  다른 한편의 길을 선택한다. 이번 생에서는 여러 번의 기회와 여러 번의 선택들이 가지에 가지를 쳐서 그물처럼 얽혀있다. 처음의 계획대로 가는 것은 없고 살다보면 이런 저런 변수와 시간의 파도에 떠밀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면 낯선 모래사장에 엎드려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쉽고 단순한 말이지만 우리의 삶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들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는 삶을 고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작게는 가족부터 크게는 국가나 사회가 그러한 삶을 요구할 때도 있고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이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나 강박관념에 휩싸여 스스로를 몰고 갈 때도 있다. 물론 즐겁고 행복한 셀럽들도 있고 평화와 행복을 찾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조차 그리 쉽지 않다. 그런데 타이밍이라는 것은 순간적으로 찾아온 기회와 같아서 놓쳐버리면 되찾기 쉽지 않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 길이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괜찮아 우린 눈부시니까  (6) 2025.04.10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빛  (16) 2024.12.14
성적인 문제와 탄트라  (8) 2024.11.17
내가 모를거라 생각했어?  (8) 2024.11.15
오늘이와 청이  (21)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