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2. 00:26ㆍ의식성장
https://youtu.be/ff0QASe3JpQ?si=EgLLShJr2yt0bSe2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지만 인류 역사상 법이나 규칙이 끼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사랑 또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라는 것은 종교나 도덕적 가치, 법이라는 역사사회적 게임의 규칙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의 진실을 인류의 고정관념이라는 그림자로 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이라는 육체를 갖고 태어나기 전에 소망했던 영혼의 육화목표가 사랑이었다면 육신 속에 사랑에 대한 기억을 잃고 더듬거리다가 사랑을 더 엉망으로 만드는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목표로 설정했던 사랑의 진실을 체험하려던 기억을 상실해버린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겪게 되는 혼란과 충격 속에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체험할 확률은 희박해진다. 세익스피어가 작품으로 써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절한 사랑이 그 당시 상황에서는 죄악이고 이뤄져서는 안되는 금기의 사랑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그들의 사랑은 당연히 이뤄졌어야 할 사랑이고 그것이 사랑이 전하고자 했던 사랑의 진실이었다. 반목과 질시로 대대손손 적대시하던 집안의 아들과 딸이 하필이면 왜 원수집안의 이성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인류의 관습이나 상황설정 상 금기되는 사랑은 도리어 사랑을 들춰내서 풀어놓아야 사랑이 갖는 진실한 힘을 깨닫게 된다. 사랑은 서로를 끌어안고 화해하며 보듬어주고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원수 집안끼리 싸우다가 사랑하게 된 두 집안의 자녀들이 살아서는 이룰 수 없을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잘못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림자로 덮어서 감추려다가 엉망이 되고 만 것일 뿐이다. 인위적으로 지켜내려던 사랑은 가짜 사랑이거나 껍데기 뿐인 사랑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진짜인 사랑은 당시의 상황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결국에는 좀더 자연스러운 결말일지 누가 알겠는가?
물론 다양한 상황 속에서 현재의 내 머리로는 사랑에 정답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사랑을 체험함에 있어 지금 당장 풀리지 않는 갈등의 문제에 접하게 된다면 한 걸음 떨어져 사랑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의 큰 그림을 알아차리는 것도 좋겠다. 더구나 그것이 지구의 규칙이나 각국의 법과 얽혀있는 것이라면 지구 위의 어딘가에선 완전히 반대이거나 전혀 다른 사례도 있을 수 있을테니까. 사랑은 흐르는 강물처럼 멈출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절제와 균형을 잡되 사랑의 본질과 진실에 대해서는 종종 되짚어볼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원래 사람이 좀더 안전하고 행복한 삶이 되고자 구축하고 마련했던 법이라는 규칙과 질서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우리 스스로를 옭아매고 구속하는 쇠사슬이자 감옥이 되어간다면 그래서 그 생존게임의 규칙이 우리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간다면 이제는 그 생존게임의 룰을 수정하고 변화를 주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대한 쓰나미가 법이 만든 모든 것을 쓸어가버리고 아예 도리어 후퇴하거나 새롭게 바꿔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그 전에 미리 조금씩 조금씩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사랑의 법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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