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가 약한 자의 생존기

2024. 10. 11. 00:32의식성장

https://youtu.be/BuE2aexPbik?si=Q4JQBfFoA5hGpbbA

 
 
어렸을 적에 부모님은 내 앞에 앉아서 나를 지켜보곤 했다. 왜냐하면 내가 고기를 뱉어내지 않고 삼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느끼하고 비린 고기를 삼킬 때면 구역질이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뱉어내기도 했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삼켜야 한다고 부모님이 밥상 앞에서 잔소리하고 야단칠 때마다 여러번 씹어서 목을 넘길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 흘렸다. 생리적으로 나온 눈물인지 감정적으로 억울하고 슬퍼서 나온 눈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하기 싫은 일을 떠밀려 해야 하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특히 어머니는 서양권이나 서구 문화에 대한 로망이 허영심으로까지 발전한 수준이라서 그런 모습을 접할 때면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에 나오는 비비안 리의 역할이 연상되기까지 했다.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백인들이 키가 크고 체격이나 체력이 좋은 이유가 고기를 많이 먹기 때문이며 그래야 한국인들도 머리가 좋아져서 공부도 잘 하고 성공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서양문화 찬양론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는 더욱 더 가열차게 고기를 잘 먹지 못하는 내게 더 싫어하는 기름기 많은 지방 비율이 높은 고기만 골라서 더 먹이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고기를 그럭저럭 먹으며 군대까지 갔지만 나는 전역을 몇달 앞두고 명상과 채식이라는 신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약간씩 채식을 시도해보면서 채식을 하다 말다 하면서 전역 후 본격적으로 채식을 하느라 집 식구들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채식과 관련된 정보를 검색해보고 요리도 직접 해보면서 '비건'이라는 순수 채식을 하려고 했다. 원래 비위가 약한 내게 채식이 더 잘 맞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남들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생선, 조개 등은 물론이고 계란, 우유, 유제품까지 제외하고 채식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저항감도 장난아니었다.
 
지금에 비해 그때 당시는 채식인은 스님을 제외하고는 생소한 개념이었고 비위가 약하거나 알러지 때문에 불가피하게 채식을 하는 극소수의 특수한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는 SBS TV의 다큐멘터리는 비건 채식을 했을 때 건강 치유효과를 고기편식과 대조하여 보여주면서 방송대상까지 탔지만 재방송은 커녕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방송을 타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축협, 육가공업체 등에서 방송국에 항의방문을 하고 시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후문도 있었지만 당시의 분위기 상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는 동명의 프로그램은 잡식요리를 맛보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안팎의 압력이 컸었고 의사들까지 나서서 육식론자와 채식론자가 나와서 논쟁을 벌이다가 결론은 영양과 맛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 잡식을 하자는 결론으로 마무리지을 때가 대다수였다. 그래서 비건 채식을 알리고 스스로도 비건 채식을 하고자 몸부림을 쳤던 나날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채식 논쟁 댓글에는 필사적으로 댓글을 다는 것에 사력을 다했었다. 채식 동호회 카페회원수도 적었고 관련 채식물품이나 채식식당도 찾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채식 분위기를 보고 있자면 아직도 갈 길은 멀고 부족해보여도 정말 많이 변했구나하는 미소를 지을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