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4. 23:27ㆍ의식성장
https://youtu.be/_dEbQho03wE?si=0_9JBO8HJn_bE_4Z
가끔 동물과 사람 사이의 교감을 볼 때면 언어를 사용한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소통을 하는 모습을 접하게 된다. 눈빛, 표정, 몸짓이 말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한쪽이 죽었을 경우에도 의사소통하기도 한다. 그 형태는 꿈에 보인다거나 둘 만의 공감하는 텔레파시를 주고 받게 된다. 예전에 따랐던 스승과는 멀리 떨어져있었고 언어도 통하지 않았지만 가끔 결정적일 때 꿈에서 메시지를 받곤 했었다. 꿈 속에서 말없이 돌아앉아 내 손을 잡기만 했지만 그때 수많은 언어와 감정이 전해져왔었다. 꿈 속이라서 그래서 였는지는 몰라도 백마디 말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사람 사이에도 부모 자식간이나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는 말이 필요없을 때가 있다. 서로 말없이 쳐다보기만 해도 또는 멀리 떨어져있어도 공감하는 마음의 대화를 하게 된다. 사랑이 서로를 연결시켜주기 때문에 어떤 대화보다도 더 직통 라인처럼 진한 교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의 우리는 말없이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우리의 보이지 않는 길에 낙엽이 쌓이고 쌓여서 길을 잃게 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잠잘 때만큼은 우리가 몸을 잊고 잠시나마 자유롭게 보이지 않는 길을 걸을 수 있다.
현재의 우리에게 잠잘 때만 허락된 꿈이라는 좁은 길. 그나마 그 좁은 길을 통해서라도 숨쉴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지만 그 넓은 꿈 속에서는 너무 많은 길들로 도리어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의 자아.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누적된 감정이 들고 일어서며 영혼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기도 전에 개꿈이라 불리는 허상을 접하고는 꿈을 무시하게 된다. 얼룩진 거울에 비친 진실의 뒤틀린 모습을 알아차리기를 영혼은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잠 잘 때만 풀려나는 육체의 사슬은 마치 잠 잘 때 우리가 매일 죽고 아침이면 깨어나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겪도록 묶고 있는 강아지의 목줄과도 같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가 잠시라도 육체라는 현실에서부터 자유롭게 자신을 되돌아보고자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아니면 최면에 빠지는 마취 상태를 찾는지도 모르겠다. 잠잘 때 꿈을 꾸면서 겪게 되는 자유로운 해방감을 얻기 위해서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만 현실적인 물질을 이용하면 대가는 부작용이 따른다. 술이나 담배는 몸을 망치다가 결국은 중독이라는 나락으로 이끌고 최면이라는 마취 상태는 잠잘 때 만큼 자연스러운 안전장치 대신 보이지 않는 외부의 간섭에 무방비하기도 하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유체이탈을 하기 보다는 잠 잘 때 사후세계나 유체이탈을 미리 가상체험하는 것인지도.
현재 따르고 있는 스승이 이틀 전 꿈에 나와서 오픈 파티에 내가 참석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이런 저런 준비작업을 같이 했었고 아주 잘 아는 친한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서로를 대했다. 꿈에서 깨어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줄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어제밤 실시간 방송에서 그녀의 입을 통해 내년 초 전시회 오픈 파티에는 카페 2등급 이상부터만 참석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너무 많은 참석요청이 쇄도했기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의 변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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