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마리야

2024. 10. 23. 00:11사랑

https://youtu.be/qJqUN0O4OC8?si=6mnhsQeS3qPnDaxU

 친할머니는 동지 때가 되면 팥죽을 끓인 후 아파트에 살고 있던 집안 곳곳의 구석진 곳을 돌아다니며 팥죽을 뿌리곤 했는데 어머니는 더러워진 벽지를 어찌할 수 없어 난감해했다. 그때는 할머니께서는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시대변화를 모르고 미신을 믿는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전통적인 풍습에 따라 우리 집안을 위해 나름의 처방전을 행한 것이었다. 동지에 팥죽을 끓여먹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존재들이 싫어하는 것이 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안의 구석진 곳에 주로 머물던 존재들에게 팥죽을 뿌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풍습들이 죄다 비과학적인 미신일 뿐이었을까? 단오 때 창포에 머리를 감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으니 나쁠 것도 없을 것이고 설날에 떡국을 먹으며 한 살 더 먹고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는 것이 배도 부르고 재미난 이벤트인 건 사실이다. 동지에 팥죽을 끓여먹는 것은 추운 겨울에 뜨끈뜨끈하고 소화도 잘되는 팥죽이라 나쁠 것도 없지만 무속인들이 공통적으로 보호막이나 처방전처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팥죽인 것도 사실이다. 허황되어 보이는 옛이야기 속 이무기가 용보다 여의주를 더 많이 가졌어도 그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서 용이 되지 못한다는 교훈처럼 말이다.
 
그랬던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 아침부터 목욕을 하고 앉아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죽는 복이 있다면 그런 것일까하는 생각을 요새도 하는데 죽기 전까지 병을 앓으며 주변을 귀찮게 하거나 돈을 많이 썼던 것도 아니었고 갈 때도 너무나 평온하게 가셨다. 태어나서 늙어가고 병이 들고 죽는 과정 중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 병들고 죽는 건 치료나 자살 등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병들거나 사고사하는 경우엔 그런 선택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니 금수저로 태어나는 것을 자유선택할 수 없으니 그것 또한 복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죽는 것 또한 복이 있다면 그럴 것이다.


죽을 때 가장 많이 하는 후회들을 보면 첫번째가 '수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온 것'인데 근심, 걱정이 많았던 지난 날들을 지금 와서 되짚어보면 그렇게 걱정했던 일들도 막상 정면으로 부딪혀보면 결국은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는데 걱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두번째는 '무언가에 깊이 빠져 몰두해보지 못한 것'이다. 깊이 빠져 몰두할 수 있는 뭔가를 찾다가 시간을 보냈던 때를 떠올리다보면 내가 몰두할 수 있던 것이 뭔지를 좀더 분명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번째는 '조금 더 도전적으로 살지 못한 것'이다. 대부분 두려워하면서 밀쳐두거나 다음에 하자고 남겨두었던 때를 떠올려보면 도전적으로 살아도 크게 손해보거나 잘못된 것도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네번째는 '감정을 솔직하게 주위에 표현하지 못한 것'이다. 숨죽이며 자신을 속여왔건 가식으로 자신을 포장했건 막상 삶을 마감할 땐 아쉬운 부분이 된다. 다섯번째는 '사랑하는 이에게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다. 짝사랑을 했건 가족들을 원수처럼 대했건 이건 사랑을 체험하러 왔던 애초의 목적을 되살려본다면 누구든 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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